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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외교관으로 본관은 고령이며 1417년 경상도 고령에서 태어나 1475년 사망 했어요. 그는 조선 세종부터 성종까지 5대에 걸쳐 활동했으며 휘문이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가로서 경세가, 외교가, 실무가로서의 면모를 모두 갖추 었어요. 특히 세종의 총애를 받아 집현전 학자로 활동하며 한글 창제와 관련된 작업에 참여 했고 이후 외교관으로서 왜와 명나라, 여진 등을 상대로 뛰어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어요.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두각을 나타내어 1435년 식년시에 급제한 이후 벼슬길에 들어섰으며, 세종의 총애를 받아 집현전에서 김종서,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근무하며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 했어요. 음운학, 언어학에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문자 체계 구축에 일조하였으며, 이후 1443년 훈민정음이 반포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또한 그는 외교적 재능도 뛰어나 1443년과 1447년에 일본에 파견되어 일본과의 외교 사절 역할을 훌륭히 수행 했고 귀국 후 해동제국기 를 저술하여 당시 일본과 류큐국의 정치, 문화, 지리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후세에 귀중한 자료를 남겼어요. 이 책은 동아시아 해양권에 대한 이해와 조선의 대외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에도 귀중한 사료로 인정 받아요. 그는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는 계유정난 당시, 세조를 지지하고 힘을 합쳐 권력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많은 사림파 학자들과의 갈등이 심화 되었어요. 특히 그는 세조의 책사로서 한명회 등과 함께 세조 정권을 지지하며 성삼문, 박팽년 등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 사육신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어요. 이로 인해 그는 세조 정권의 실세로 자리 잡게 되었으나 후대에 충신을 배신한 인물로 비판받는 경우도 많이 있었어요.

